진정한 행복의 가장 큰 적은 “나 라는 우상”이다. (2022.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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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ly 2, 2022

100세가 넘은 인문학자 김형석 교수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는 존재라고 말한다. 기독교 전통이 고리타분하다고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그 전통이 선하지 않거나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선한 것들을 지킬 사명을 받은 인간이 게으름에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깊은 사고를 꺼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만 편하면 세상은 어찌 돌아가던 상관없다는 생각은 자손들을 더욱 어려운 환경으로 몰아간다고 말한다.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는 돌발 질문을 받자 진리라는 것을 지켜온 자신을 돌아볼 때 과연 행복했느냐라는 도전적인 질문인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고생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답변했다. 자녀들은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할 만한 때가 교수님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는데, 그 이유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교수 시절 연봉과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며 월급이 조금만 오르면 기뻐서 자랑하고 행복하다 느꼈는데, 상대적으로 등록금을 걱정해야 할 제자들의 고민은 생각 못한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다고 한다.

요즘 자기계발서가 대세다. 성경의 개념이나 좋은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것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들만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자기계발이냐가 중요하다. 역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계발에 몰두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하게 했는지를 알려준다. 경제인, 정치인, 대통령, 심지어 자기를 위한 의사와 목사가 되면, 자기는 행복할지 몰라도 행복한 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은 불행해진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은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고난을 당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도가 은혜 받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예배나 은혜의 소비자가 아니라 누리면서 동시에 흘러넘치도록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정한 의식주 수준이 보장된 사회에서는 더더욱 행복은 자신을 챙길 때가 아니라 남을 챙길 때 온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고생할 때 온다. 그리고 소중한 것일수록 그냥 지켜지지 않는다. 목장에서 삶에 대한 감사 나눔과 동시에 반드시 말씀 나눔을 해야 하는 이유는 진리에서 떠나 자기만의 행복이라는 우상을 섬지기 않기 위해서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다른 사람을 섬길 때 행복하다. 그리고 지켜야 할 진리를 위해 수고할 때 행복하다. 오늘날 몇 몇 인문학자들과 다를지라도 그것이 진리다. 정말 영원한 세계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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