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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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ember 18, 2023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정체성’이라고 한다.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은 우선순위도, 시간과 물질 사용도, 신앙에서도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건강하게 산다. 인생을 세상의 유행과 쾌락의 물결에 띄우지 않는다. 과거에 묶이지 않으며 미래에 도박을 걸지도 않는다. 오늘을 자기답게 산다. 누웠던 곳에서 눈을 뜨지 못하는 날은 온다. 당장 지구의 종말 앞에서도 품위가 있다. 어떻게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추구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오늘 당장 그런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방법이다.

코칭 이후에 “팔로우 업”을 할 때가 있다. 대게 결심한 대로 잘 하다 순간 “실패 했어요.”라며 자책한다. 겸손하게 실패를 인정한 모습이지만 그런 자세로는 실패만 지속된다. 노력해서 되려는 ‘척하려니’ 힘만 든다. 그냥 ‘되라.’ 무슨 소린가 할 것이다. 착한 척하지 말고 착하면 된다. 신앙 좋은 척 보이려하기보다 신앙이 좋으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척하려는 노력’은 실패를 예약한 셈이다. 시민권자인 척하지 말고 시민권자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신분이 먼저 바뀌어야 실패와 실수를 줄인다. 목표를 눈 앞에 두고 거듭 실패를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피조물로 여기고 새롭게 사는 것이 낫다.

‘척’이 아니라 ‘된’ 사람의 사고는 강력하다. ‘나는 초콜릿을 먹을 수 없어’라기 보다는 ‘나는 초콜릿을 먹지 않아.’라고 말한다. ‘죄를 지을 수 없어’라는 말에는 그 동기가 다른 대상의 눈치를 본다거나 죄를 지은 후 치를 파괴적인 대가와 초라함을 계산한 것이다. 효과는 있겠지만 죄를 피하는 이유가 바깥에 있다 보니 유혹은 또 다시 찾아오고 전쟁은 쉼이 없다. 하지만 ‘나는 죄를 짓지 않아.’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은 정체성을 인식한 말이다. 동기와 이유가 내 신분 때문이다. 주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성화를 향해 달라가기 때문에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 내 정체성과 신분에는 죄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 살아야 할 모습을 미래로 미루면 결국 허황된 꿈으로 끝난다. 척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자.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시작부터 주도권을 가지고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다. 자신을 조롱하는 실수와 실패 횟수도 급격하게 줄일 수 있다. 5년 후 오늘과 다른 삶을 기대한다면 오늘을 다르게 살자.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와 영원을 기다리는 삶은 더욱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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