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묵상하다.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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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pril 15, 2023

대학생 때 유일한 액세서리는 십자가 목걸이였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닌 효과는 분명했다. 친구들은 나를 크리스천이라 불러줬고 종종 기독교인으로 피해야 할 것들로부터 지켜주었다. 그런데 나를 살리신 그 십자가가 어느 순간 부끄러워졌다. 교회가 욕을 먹기 시작하고 십자가는 마음속에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더 이상 걸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심장에서도 십자가가 사라져갔다. 십자가를 눈에 보이게 달고 다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이 완전한 아들 안에서 표현되는 곳이다. 인간의 죄가 처벌된다. 몸으로 지은 죄로 채찍질을, 얼굴에는 침 뱉음과 뺨을 맞는다. 손과 발로 지은 죄로 못에 박힌다. 악한 생각에 가시 면류관이, 마음에 품은 죄로 창에 찔린다. 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박혀 고정된다. 십자가 위에서는 숨을 내쉬기 위해 정기적으로 손발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 올려야 한다. 그럴수록 신경이 찢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힘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려 등을 사용하면 채찍에 맞아 찢어진 등 조직이 나무 기둥에 밀리며 찢어지고 가시가 박힌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폐는 한 숨의 산소를 갈망하며 온 몸을 움직이게 한다. 걸쭉해진 피를 내 보내려고 심장은 온 힘으로 쥐어짠다. 공기 한 숨, 물 한 모금을 갈망하다 기절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다시 깨어나 이 과정을 1천 번 반복한다 하여 로마인에게는 철저하게 금지된 사형법이다. 끔직하고 진절머리 나는 형벌만큼 죄 값은 심각하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할 행위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했음을 깨닫는 것이 회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도 드러낸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보지 않는다. 대체로 선량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성인(St.)까지는 아닐지라도 천국에는 능히 들어갈 것으로 착각한다. 쉽게 죄를 지으며 가볍게 용서 받을 것이라고 세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십자가는 내가 지은 죄가 가볍다는 착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십자가는 우리가 결코 의롭지 않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인류의 죄로 버림을 당하셨다면 우리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상은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을 나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자랑스럽지 않다면 여전히 나는 하나님과 전쟁 중이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장소다. 그곳이 여행 장소보다 못하다면 분명 나는 하나님과 화목된 것이 아니다. 최악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삶을 최고로 만들고 싶어 하신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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