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낮출 수는 없습니다. (2023.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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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uary 8, 2023

기준을 낮출 수는 없습니다. 기준 변경은 제 권한도 아니고, 기준만은 지켜 본을 보이라고 목사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 설교를 듣고 한 분이 연락을 했습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는데, 가끔 적용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기준을 좀 낮추면 주변 분들에게도 추천을 해 줄 수 있을 듯한데 기준이 높아 추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준이 높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과연 제가 기준을 낮춘다면 교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넘쳐나고, 설교를 듣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겨날까요? 도리어 주님께 책망을 받을 목회자로 판명되고, 성도들은 결국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까요?

기준을 낮추자는 말이 좀 더 사람을 이해하자는 차원이라면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보다는 좀 더 사람에게 맞추자는 의미라면 곤란합니다. 분명 교회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정’이라는 것도 있어야 하고, ‘의미’와 동시에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의리’로 뭉친 친교 공동체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으로 생명을 낳는 전도를 통해 거듭난 영혼들이 예수님의 성숙한 제자들로 성장하도록 훈련하는 곳입니다. 모든 훈련에는 수준 높은 기준이 있습니다. 썩은 계란에서는 생명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달걀은 부화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구원한 후에 곧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을 믿는 자 안에서 이뤄갑니다. 신생아가 음식을 먹으면 살은 찌지만 운동을 통해야만 건강해지듯 영적 훈련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뼈와 강한 근육으로 만듭니다. 기초 영양분을 흡수하는 수준만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수준 높은 운동선수처럼 수준 높은 믿음의 사람은 삶의 기준이 높습니다. 겨우 구원 받는 수준에서 만족할 수 없는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주 예수님을 믿는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둘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기준입니다. 바울처럼 훈련을 통해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사람은 주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착각 속에 아무 훈련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기준을 낮추지 마세요. 여러분의 권한도 아니고 기준을 지킬 때에야 영혼이 삽니다. 또한 높은 기준을 지켜야 하나님께서 안심하시고 제자들로 성장시키실 영혼들을 맡기십니다. 주님께서 필요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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