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믹, 신앙의 기회인가 좋은 핑계인가?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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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May 28, 2022

얼마 전, 팬더믹에 대한 교회의 대처가 잘못 되었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던 분이 찾아와 자신의 민낯을 보았다며 고백 했다. ‘놀러는 가고 교회는 안가고’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무식하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대면예배’를 강조하면 무식한 목사로 보였고, 맹신이라며 비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잘 비켜갔던 코로나에 걸려, 경우에 따라 그냥도 지나간다는 코로나로 인해 정말 죽을 것처럼 아팠다고 한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두 줄이 없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격리하는 동안 자신의 SNS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심각한 죄책감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교회에 갔다거나 성경을 읽었다거나 하는 주님을 높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추억에 해당하는 사진은 하나도 없고, 팬더믹 상황에도 맛 집, 공원, 여행 등등 여기저기 방문한 곳만 많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랐다고 했다. 교회가 코로나 온상지라며 내심 은근히 피해 다니고 발길조차 주지 않았던 교회 예배당에서가 아니라, 정작 어딘지도 모를 다른 곳에서 코로나에 걸렸다. 주변 신앙인들을 살펴보니 신앙을 지킨다며 무식하게 교회를 다니다 코로나에 걸려 고생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도 않고, 도리어 자기처럼 교회를 회피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확진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배도 정시에 바른 자세로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편리한대로 시간과 장소도 결정해서 예배를 시청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몇 번이나 받으셨을까 부끄러웠다고 한다. 가장 큰 부끄러움은 아이들 학교, 직장, 마트, 취미생활은 어떻게든 열심을 냈던 흔적이 남았는데, 하나님을 향해 진실했다는 자신의 고백과는 달리 영적인 것들은 아무런 흔적으로 남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코로나를 걸리고 나서야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아는 후배 목사는 애들이 세 명이다. 험한 이민 생활에서 아직 영주권도 없다.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 1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 통증이 심하다. “언제 하나님께 가고 싶냐?”고 물으니 “어린 애들만 다 크면 그냥 가고 싶다.”고 한다. 몸도 아프고 경제적으로도 힘겨워 하루에도 수 십 번 선교와 목회를 그만두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를 중지할 수도, 선교비를 줄이지도 않는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시작한 선교도 아니고, 선교하는 교회라고 자랑하기에는 희생이 너무 크다. 자기가 힘들 때 교회들도 어렵겠구나, 해외에서 목숨을 걸고 선교하시는 분들은 더 힘드시겠구나하는 마음에서 더 헌신한다. 팬더믹의 아픔과 위기를 신앙을 강화하는 기회로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고, 적당히 좋은 핑계거리를 만나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바울 선생님은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갈6:17b)라고 고백했다.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 걸렸다 나은 그 코로나의 흔적이 단순히 후유증으로 남지 않고, 바른 신앙을 위해 몸부림친 흔적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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