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자답게 교회답게. (2022.05.08)

By
Updated: May 6, 2022

교회의 본질은 영혼구원이다. 교회는 ‘오락’이나 ‘취미생활’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당시 고작 2만 5천명으로 추산되는 초대 크리스천들은 기독교 공인 직전 2천 만 명이 되었다. 교회의 문턱은 턱없이 높았지만 제자들이 늘어났다. 말 뿐이 아닌 변화된 “삶”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에서 우리는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 아웃리치(outreach)를 통해 만난 영혼들에게 노아의 방주로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가? 예수님처럼 “와 보라.” 하며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가? 자신의 삶이 신앙생활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어야 교회다. 천사들이 24시간 우리의 삶을 밀착취재 했을 때 예수님께 기쁨과 자랑이 될 수 있는가?

중국 교회는 핍박을 받자 생존 이외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렸다. 교회를 꾸미고 프로그램을 좋게 만들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가볍게 영적인 여행을 위해 그들이 붙잡은 것은 단 하나,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삼삼오오 모여 예배하는 것이었다. 예배하다 발각되면 순교를 당할 판임에도 불구하고 염려하지 않았다. 순교보다 예배가 더 중요했다. 이렇게 예배한다는 본이 되었다.

제자란 영적인 것들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영적 ‘공허’를 채우기 위해 주님을 상품화 시키는 한 제자가 될 수 없다. 돈이 되는 것이 우선이고 영적인 것을 미루는 삶은 충분한 변명거리가 있더라도 제자가 아니다.

뉴질랜드와 캐나다의 연구에 의하면 기독청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80% 이상이 학기 중 신앙을 버린다. 직장인이 되고 승진을 하면 95%로 늘어난다. 그 이유가 씁쓸한데, 수입이 늘면서 돈으로 헌신하기가 싫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소속해 있으면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희생해야 하니 교회 밖에서 교회를 손가락질한다. 헌신과 희생을 통해 교회를 섬기며 제자로 성장할 기회에는 관심이 없다.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교회는 헌신의 대상이 아니다. 자기 생각에 맞는 더 좋은 교회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애써 교회를 다닐 생각도 없다. 적당히 영적으로 꿀꿀할 때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검색해 잠시 갈증만 채우면 그만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자가 되어 교회로 살아가라고 하는 말이 매력적 일리 없다. 자신의 편리함과 안락함이 우선인 소비주의자들이기에 공동체를 세워본 경험이 없다. 교회를 위해 손해 보는 일도 할 수 없다. 백화점 쇼핑하듯 자기 즐거움이 교회보다 앞선다. 당연히 영적인 본이 되지도 못한다. 취미생활보다 못한 열정으로 본을 보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 신앙은 그저 많은 악세사리 중 하나일 뿐이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남이 해야 할 일일 뿐이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공구가 망치뿐인 목수는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는 말처럼, 유일한 관심사가 자기만족과 성공이기에 자신의 행복과 안전만이 인생의 목적이다. 박애주의자가 될 수도 없고 민족의 리더가 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빛과 소금의 삶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제자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사랑한다. ‘나를 위한 공동체’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나’로부터 존재감을 찾는다. 예수님의 제자와 교회로 살아가는 방법은 단순하다. 세상이 예배를 손가락질 할 때 예배부터 바로 드리는 것이다. 예배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희생해서 예배를 보호한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교회 공동체는 자신을 버리며 값진 희생과 고귀한 헌신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여 차원이 다른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를 드려야만 소위 유행과 같이 말하는 삶의 예배조차도 가능하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ime limit is exhausted. Please reload the CAPT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