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중독에서 벗어나 훈련하자. (2022.04.03)

By
Updated: April 3, 2022

배려하지 못하면 좋은 기회를 잃거나 상처를 주기도 한다. 분명 배려는 모두의 좋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배려하다보면 주객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며 배려 받으려고만 하고 소위 신앙 훈련 대신 ‘배려중독 신앙’이 된다.

상대를 배려하여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할 때 마음에 닿도록 정다이 말하라고 했다(사40:2). 그런데 부드럽게 말할 때만 받아들이고 급한 짧은 명령에는 거부감을 갖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우선 위급 상황에서 신속함이 떨어진다. 또한 배려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일이 그 이유를 이해하고 다 알아야만 순종하겠다는 교만한 자세가 된다. 게다가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를 결정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된다. 성숙한 사람은 상대방의 태도보다 정보의 긴급성과 정확성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가급적 정다운 소통이 필요하지만 상대방의 태도에 나의 순종여부를 맡기는 것은 인격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이다.

한번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미디안과 전쟁시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며 항의를 했다. 불렀지만 전쟁에 오지 않았으면서 대중 앞에서 기드온을 향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때 기드온은 자신이 한 일이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보다 못하다며 너그럽게 져줬다.(사8:1-2) 문제는 입다가 암몬 자손과 싸웠을 때 발생했다. 그때도 에브라임은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입다가 참전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던 에브라임이 또 적반하장인 것이다. 배려에 익숙해 거짓을 버리지 못하고 기고만장했던 그들의 운명은 비참했다. 입다는 사람들에게 ‘쉽볼렛’ 발음을 시켜보고 어눌하게 발음하는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명을 골라내어 모두 처형했다.(혀 구조상 “쌀” 발음을 못한 것과 비슷하다.)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배려에도 함정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말 못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한 리더들의 곤란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내 보낸다. 그러나 말하지 못한 사람 못지않게 듣지 못한 사람의 입장도 배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세상에는 그렇게 말 못할 사정이 많지도 않다. 단지 용기 없는 귀찮음을 말 못할 사정이라며 둘러댈 뿐이다. 책임자가 부하직원의 말 못할 사정을 듣지 못해 실수 했다고 한다면 말 못할 사정을 밝히지 못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결국 그 뒤에 숨는 사람만 많아진다.

배려 받는 것에만 익숙하면 영적 성숙은 더디고 쉽게 사기를 당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추울 때는 추운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한다는 말과 같다. 영적 미숙은 이단적 정보에도 약하다. 이겨내야 할 훈련과 고난은 피하려 하고 피해야 할 죄를 인내하며 즐긴다. 배려 중에 반드시 피해야 할 배려는 자기 배려다. 나를 망하게 하는 배려 중독이다. 배려 중독에서 벗어나자. 코로나는 없어지지 않거나 또 다른 팬더믹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진실한 신앙생활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지킨 것들이 곧 나를 지켜줄 것이다. 좋은 습관이 가정과 직장을 지키고 내가 지킨 법률이 나를 지킨다. 내가 지킨 운동 시간은 내 건강을 지키고 내가 지킨 예배와 삶 공부, 목장은 꼭 필요한 순간 내 영혼을 지킨다. 자신을 배려하지 말고 영적 건강을 위해 훈련해야 앞으로 살아남는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ime limit is exhausted. Please reload the CAPT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