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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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October 24, 2020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달한 가나안의 지리적 위치는 평화로운 곳은 아니에요.

육로가 주된 교통수단일 때 가나안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중심지였어요.

그곳으로 인도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잘 믿으면 세 곳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침략을 당할 것임을 기억하라는 일종의 협박(?)적인 약속이 있었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광야를 지났더니 역시나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땅이었죠.

자칫 오해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만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속 좁은 밴댕이처럼 보여요.

말 잘 들으면 축복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시는 일종의 폭군처럼 볼 수 있죠.

세 대륙을 잇는 중심지에 하나님의 백성을 심어두려는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말을 잘 듣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 세 곳의 침략을 받지도 않고 본이 되라는 뜻도 있겠지만,

전쟁으로 극렬한 세 대륙의 중심에 평화를 유지할 피스메이커가 필요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가정과 직장, 사회와 학교, 그리고 교회생활 가운데 전쟁(?)의 중간에 낄 때가 있어요.

편안하게 신경 끄고 싶은데 주변의 폭풍에 휘말려 그 중심에 끼어버릴 때가 있어요.

갈등이 생기는 그 자리를 피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오지랖이라 생각되는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있게 하셨다면 어떨까요?

운이 좋지 않아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화평케 하라는 하나님의 바램이었다면요?

세 대륙 사이에서 서로를 이간질을 시키라고 가나안에 정착시키신 것은 분명 아니셨겠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서 세 강대국이 쳐들어오지 못하고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라셨겠죠.

그렇다면 피스메이커가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해야만 했던 일을 무엇일까요?

해답은 세 대륙의 힘을 견제하거나 살살 달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었어요.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면 됐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며 살 때 세 곳의 분쟁도 막아서고 평화를 유지해 줄 수 있었어요.

오늘날 삶의 현장에서 피스메이커 역할을 할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중재의 힘은 자기의 능력을 계산하고 당사자들을 잘 이해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때에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예요.

평화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오는 거예요.

“복 되도다 화평케 하는 자들이여!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우리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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