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인가 증인인가? (201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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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February 24, 2018

변호사인가 증인인가?

 

어릴 적 부흥회에 참석했을 때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우리를 변호사가 아니라 증인으로 부르셨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변호사는 자기가 본 것이 아닌 것을 증명하려 하지만 증인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말한다.”

당돌하게도 ‘참 경험주의 철학에 근거한 막무가내 해석이네!’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변증학(기독교 진리에 대해 철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호하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인간이 성경의 모든 진리를 경험하는 데는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고

다양한 증인들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객관적인 변호사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항상 ‘증인’이란 단어를 들을 때 마다 ‘객관적인 변호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증인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진리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야 신앙이 확고해지는 차원보다도 더 명확한 이유가 있었어요.

 

일반 법정에서는 변호사가 증인 보다 훨씬 뽀대(?) 나는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증인으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신 것은 다양성이나 객관성을 넘어선 다른 이유가 있어요.

성경에서 증인들은 단순히 자기의 영적 경험(혹은 체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증인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체험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했는데,

그 증거로 제시한 것이 자신의 삶의 변화(혹은 치료)였어요.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미사여구를 통해 설명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어요.

 

법정에서 검사는 증인의 말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려고 그 사람의 삶을 조사해요.

아무리 강한 주장을 해도 그 사람의 삶에 흠을 잡아내면 그의 진술은 버림받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변호사가 아니라 증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말로 세상을 설득시키려 하기 보다는 삶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라는 뜻일 거예요.

증인의 삶이 증인다울 때 그 증언도 신뢰감을 얻는 거예요.

변호사의 삶은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간혹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우리를 변호사로 부르기보다 증인으로 부르신 거예요.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변화로 예수님을 증명하라는 부탁이죠.

최근 급성장하는 모슬렘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지극해 이기적이고 테러와 같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윤리적 모습 때문이죠.

우리는 좀 다른가요? 대중매체에 오르내리는 실수한 목사, 장로, 집사들을 욕하기 전에

내가 ‘개독교인’은 아닌지 살펴볼 때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윤리의식이 세상의 기준보다 현저하게 낮은 삶을 살 때,

우리의 입술은 전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삶으로는 복음의 문을 막고 있는지도 몰라요.

예닮인은 변호사입니까 아니면 증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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