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사춘기 (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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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ember 25, 2017

신앙의 사춘기

 

인생의 사춘기가 있듯 신앙에서 사춘기가 있는 것 같아요.

사춘기일 때는 대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질문들을 하게 되요.

우선 무조건적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 온 인류를 모두 구원해 주시지

왜 꼭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구원해 주겠다는 조건을 다느냐는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냥 모두 구원해 주셔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 듯 해 보여요.

그런데 만약 판사가 사랑한다며 흉악한 범죄자들을 무조건적으로 무죄 선고한다면 사랑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지불하신 이유도

예수님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마음대로 동의 없이 배우자를 대우하는 것은 폭행이지 사랑이 아니죠.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부당한 계약이나 조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격적인 동의를 요구하는 거예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밧줄을 던져줬더니 기어들어와 수영해서 구원해보라 요구한다면 곤란해요.

 

밧줄을 잡아야 구원을 받듯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겨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의 몸을 모두 밧줄로 묶어서 건져내야지

왜 굳이 그걸 잡으라고 던져주느냐는 거예요.

이 단계에서는 ‘잡기 싫음 빠져 죽던가.’라고 나불거리려는 입술을 잘 깨물어야 해요.

속담으로 대답을 대신해요.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하면 곤란하겠죠?’

 

사춘기 때 생기는 가장 어려운 질문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어떻게 되느냐?’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같은 위인들을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에요.

한 수퍼에서 무료로 일주일간 식료품을 나눠 준다는 광고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받아 갔어요.

그런데 사은행사가 끝나자 사은행사가 있었다는 걸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식료품을 무료로 달라며 당연한 권리처럼 주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배려 부족이라기보다는

안타깝게도 듣지 못한 당사자나 전하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이겠죠.

물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이 있을 것이라는 신학적 토론도 있어요.

하지만 확실한 은혜의 복음이 있는데 굳이 있는지도 모르는 다른 길로 갈 필요는 없어요.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에는 부담스럽고 많은 희생과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해서

하나님께 떠넘기고 싶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부모에게 날 낳았으니 책임지라는 말이 참 합리적이고 그럴듯해 보인다면 사춘기입니다.

사춘기 때는 부모의 입장이나 마음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의 감정이 더 중요해요.

창조했으니 책임지라며, 전능하시다며, 사랑이시라며, 공의롭다며 하는 단어들로 질문을 만들기 전에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고 부활하여 그 피 값으로 만들어준 복음 앞에 진지하게 서 봐요.

신앙의 사춘기를 잘 보내고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해야 흔들리지 않아요.

복음이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로 여겨질 때 사춘기가 지나고 성숙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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