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희생의 섬김이 우리 몸에 배어야 하는 이유 (201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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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September 23, 2017

헌신과 희생의 섬김이 우리 몸에 배어야 하는 이유

 

프린터가 없던 시절 교회들은 주로 예배 주보를 인쇄소에 맡겼어요.

토요일이 되자 인쇄소 직원이 모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 설교 제목을 문의했어요.

“목사님, 이번 주 설교 제목을 어떻게 올릴까요?”

시편 23편을 준비하던 목사님께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불러줬어요.

확인 차 직원이 다시 물었어요. “그렇게만 올리면 되겠습니까?”

목사님께서 답변했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다음날 주보에 설교 제목이 이렇게 실렸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이시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당할 것이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인이 목자로서 살아갈 때 양들을 그렇게 보호해봤기 때문이죠.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 한 마리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켜봤거든요.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 뒤처지는 양 한 마리를 책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품에 앉고 보호해봤거든요.

그러니 그런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다윗의 목자가 되어주신다고 하셨을 때

다윗은 그 목자의 개념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안심 할 수 있었어요.

만약 다윗이 삯꾼으로 살았다면, 언제나 위험을 보면 양을 버려두고 도망갔던 사람이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시겠다는 약속에 가슴이 철렁했을 거예요.

‘이런, 내가 양을 버리듯 주님께서도 언제든 나를 버리시겠다는 저주로군.’이라고 생각했겠죠.

대충 시간만 때우던 자신의 삶이 떠오르며 결코 안심할 수도, 위로를 받을 수도 없었을 거예요.

우리의 삶에 신실함이 요구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것들로 비유삼아 자신을 드러내실 때

큰 안심과 위로가 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무엇에든지 신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신실함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이름이나 직업 등등으로 표현될 때,

예를 들자면 ‘여호와께서 (예닮 성도 누구)이시니…,’

그런 고백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에 위로와 안심이 되는 삶이라면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저는 ‘여호와께서 나의 인생에 예닮 교회 담임 목사와 같이 대우하시리니’라는 고백에

한 점 불안하지도 않고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길 소망해요.

그래서 누군가를 섬길 때 최고의 것으로 섬기려하는데 그러다보면 깨닫게 되는 은혜 중 하나가

주님께서도 지금까지 나에게 최고의 것으로만 주셨음을 알게 되는 거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이웃을 섬길 때 주님께서 나를 동일하게 섬겨주시고 계심을 깨닫게 되요.

 

영어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I want to care for others like Jesus cares for me.”

헌신과 희생의 섬김은 어떤 축복을 받아내기 위한 눈가림이나 도구가 아니에요.

예수님과 신실한 영적 친밀함과 신뢰가 깊어지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와 예수님의 그 친밀한 관계는 만 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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