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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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uary 1, 2024

얼마 전 모임에서 사모님들이 자기 남편 칭찬 한 가지씩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다. 대부분 목사님들을 디스하는 척 하면서 유머스럽게 칭찬을 잘 하셨다. 우리 집사람은 “우리 신랑은 나 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경우에 따라 칭찬이 될 수도 있고 하소연이 될 수도 있다. 분위기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분명 칭찬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들을 때,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의심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도 의심이 없으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십자가를 통해 용납되고 환영받는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5:8)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확증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무엇으로 하나님께서는 안심하실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착각할 수 있다. 검증 없는 사랑은 착각이다.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을 믿은 것은 잘한 선택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만 예수님을 믿는다면 ‘선물’만 ‘이용’하는 셈이다. 나의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한다면 그것만큼 “막장 종교”도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순간조차도 그렇게 고백하는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며 대견해 할 수 있다.

사랑은 관계적인 용어다. 관계를 통해 대상을 안다. 그래서 치킨을 사랑하고 자동차를 사랑하는 것과 다르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깊은 아픔과 고통, 그리고 기뻐하는 것을 아시듯이 적어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파하시는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아는 것이 사랑이다. 감히 그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필요를 알아 채우려고 헌신하는 것을 ‘사명’이라 부른다. 물론 하나님께는 그 어떠한 것도 부족함이 없다.

가정교회에 의하면 하나님 사랑은 결국 이웃 사랑이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하라.”고 말했다. 많은 해석이 가능하지만 분명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행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그리고 사명을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양(이웃)을 먹이(섬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순종과 섬김, 무엇보다 손해 보는 삶을 산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분노하고 공격하기보다 인내하고 손해본다. 마땅한 자기 권리일지라도 상대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권리를 포기한다. 결국 세상을 위해 손해 본 것이 많을수록 온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을 사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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