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적 세상에서 성도의 삶 (2023.08.13)

By
Updated: August 12, 2023

최근 출판된 서적들 대부분은 반기독교적이다. 어떤 책에서 “1687년 뉴튼이 ‘프린키피아’를 통해 소개한 세 가지 법칙(관성,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신의 섭리로만 이해하던 세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이론적 틀이 되었다.”라는 표현을 접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런 표현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도록 고안했을까? 과학을 신앙과 대조시키며 창조의 신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저자가 인용한 뉴튼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과학자를 인용해 기독교를 공격한다니 참 아이러니다. 그는 치매를 앓으면서도 이렇게 고백했다.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두 가지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런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성도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는 성경을 증명하며 산다.

반기독교적 세상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믿음으로 산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삶을 통해 보여준다. 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좋은 것을 먹고 운동을 통해 관리한다. 영혼을 소중히 여겨도 마찬가지다. 영혼을 소성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영혼을 강건케 하는 섬김의 운동을 한다. 예수님의 두 성품 순종과 섬김을 닮아간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유투브 시청시간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면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셈이다. 매일 추천(본래는 암송용 구절임)구절을 깊게 묵상한다. 큐티 교재 ‘거기서 내가 만나고’를 펼쳐 5분만이라도 묵상한다. 주일 예배와 목장 모임, 삶 공부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다.

반기독교적 세상에서 성도는 또한 좋은 공동체를 세운다. 자기 배만 채우고 욕심만 자극하는 모임에만 관심이 있는 세상과 달리,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모임을 지킨다. 교회 공동체는 재미를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인격이 성장하는 곳이다. 영혼이 변화되는 곳이다. 나의 변화를 통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모이기를 힘쓰며 인격의 성장을 보여주면서 천국이 있음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반기독교적 세상에서 성도는 용기 있는 모험을 한다. “모험 없는 삶은 삶을 버리는 모험”이란 말이 있다. 성도에게 가장 큰 모험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성도는 전도하지 않으면 거꾸로 세상에게 전도를 당한다. 전도의 모험이 없으면 신앙은 퇴보한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때 성장하지 않고 퇴보했다면 분명 전도하려는 모험이 없었을 것이다. 전도란 상대가 믿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상호간 신뢰 관계에 대한 확신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무신론적 세상에서 성도는 믿음의 삶, 공동체의 삶, 전도의 삶을 보이며 산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ime limit is exhausted. Please reload the CAPT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