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두려움 (202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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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ugust 5, 2023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들은 많다. 건강악화, 재정적인 압박, 자녀 양육, 부부나 직장 혹은 성도들 간의 갈등, 그리고 죽음 등 취약한 삶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두려움이 있다. 양떼를 맡은 목회자들도 많은 두려움이 있다. 음해와 유언비어로 인격에 흠집을 나고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인기가 하락하는 것을 염려한다. 성도수가 줄고, 교회가 문을 닫고, 동료 목사들이 손가락질 하고, 홀로 남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한다. 과거의 한 때 두려워했던 것들이지만 지금은 두렵지 않다. 그럴 여지가 완전히 사라져서가 아니다. 두려움의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도 멀쩡한 것이 두렵다. 일평생을 자기만족과 유익을 구하며 영적 감각 없이 세월만 낭비할까 봐 두렵다. 하나님의 소원 한번 들어드리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만 집중하면서도 갈등조차 없이 살아갈까봐 두렵다. 자기 행복만 추구하다 불현듯 주님 앞에 서서 할 말이 없을까봐 두렵다. 헌신의 자리가 아니라 편안한 자리만 찾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목회의 본질로 착각하고 살까봐 두렵다.

종종 왜 가정교회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기도 바쁜 세상에 다른 영혼에게 관심을 갖도록 떠 밀기 때문이다. 대부분 세속적인 성도들은 VIP에게 관심은커녕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이 움직여야 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선악과를 먹은 인류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다. 대놓고 이기적인 사람에서부터 자기가 먼저 건강해야 남을 섬길 수 있다는 교묘한 이기주의까지 다양하다. 그럴듯한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도 내면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두려움에 압도되면 남 탓이나 환경 탓을 한다. 물론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영향 받기 더 쉽다. 하지만 환경의 핑계를 댄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룩하게 살아갈 환경에서 벗어나 게으름을 옹호해줄 환경으로 걸어들어 간다고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환경의 기준을 낮춰서는 삶이 변하기는커녕 게으름만 늘어난다. 당분간 마음도 편하고 게으름도 고쳐진 것 같겠지만 결국 환경을 낮춘 결과 자신의 기준도 낮아졌음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정교회는 성도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토양이다. 주님의 마음을 벗어나면 불편하고 두려워지는 환경이다. VIP를 위해 고민하고, 하나님 심장을 품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섬기지 않으면 불편하고 두렵다. 세상적인 두려움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놓칠까봐 두려워진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하나님 나라와 의에 얼마나 관련된 것들인가? 내가 오늘 두려워하는 것들이 진정한 내 영혼의 초상화다. 이제 두려움도 성숙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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