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을 위한 기도시간(2025.12.07)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모교회를 섬기던 한 목사님이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떠나셨습니다. 몇년의 시간이...
MZ 세대들에게 워라벨이 열광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 결코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워라벨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의도대로 자기 발전을 하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워라벨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더욱 힘겹다. 펑크 내는 만큼 누군가가 메꾼다. 오죽하면 상위 5%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워라벨’이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시켰을까? 잡을 수 없는 뜬 구름을 쫓는 것과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인생 고락을 이겨낸 6-70대가 누릴 여유를 3-40대가 욕심내면 불행은 시작된다.
워라벨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인생을 갈아 넣게 하면서도 정당한 보상을 주지 않은 민폐회사들 때문이다. 그러나 워라벨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직장에서 노하우를 배울 수 없다. 좀 무리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비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워라벨이라며 자신의 선을 지키고 할 줄 알면서도 못하는 척 하는 것이 지혜는 아니다.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이 직장생활의 노하우가 아니다. 어디서든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으면 남는 건 자유가 아니라 후회다.
신앙에서도 균형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솔직하게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균형이 가능할까?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거나 소홀하지 말자는 차원이다.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자는 차원이지 세 영역에서 균형은 불가능하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내어 선교여행에 동참한다든지 성경학교 봉사를 하는 등 교회를 섬기는데 사용하는 이유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선순위가 신앙이기 때문이다. 신앙이 바로 서야 나머지 질서가 잡힌다.
자신의 행복을 묵상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듣는 순간 ‘불행하다’는 생각을 지지할 수 만 가지 이유들이 떠오른다.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은 주변의 불행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항상 패배한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사람만이 수많은 불평거리 중에서 감사거리를 찾아낸다. 감사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자족하는 마음이 없다. 자기도 괴롭지만 주변 사람들을 더욱 괴롭힌다. 진정한 기쁨은 Joy원칙에서 온다. Jesus First, Others Second, and Yourself last.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질문을 바꾼다. “나는 행복한가?”가 아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은 행복한가?”를 생각한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할 때, 거기서부터 나의 행복도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