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달려 나가자.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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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uary 28, 2023

후회(regret)와 반성(remorse), 회개(repent)는 하나님께 돌아가느냐 여부로 갈린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회개의 출발선일 뿐이다. 죄의 무거움을 인식해야 천박한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죄책감과 수치심이 있다. 죄를 처리하기 위해 주님께서 험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아야 후회와 반성의 얄팍한 수준을 넘어선다. 진정한 회개 없이는 하나님을 높이지도 않고 삶이 변화되지도 않으며 얼마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시간이 지나면 예전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그릇된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다시 돌아간다. 죄와 결별하고 마음을 돌이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변화가 없으니 시말서를 쓰듯 자숙은 했지만 다시 쏘려는 본성의 악독이 고인다.

자신의 그릇된 행동의 결과로 타인이 피해를 입었다 치자. 양심이 있으니 그 결과를 불행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행위의 동기를 더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일으킨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유감이긴 하지만, 그 동기와 원인을 바라보지 못한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죄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다. 회개란 이전과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고 마음으로부터 죄를 미워하는 새로운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단지 잘못된 행위로 인한 결과에 유감 표현만으로는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 내면의 변화를 통해 삶의 전반적 변화가 아니라 단지 나쁜 결과가 가져다 준 고통을 멈출 요량으로 그릇된 행동을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수준이다. 이는 인간의 인정과 칭찬 혹은 적어도 비난과 손가락질은 받지 않겠다는 자기 사랑의 발로다. 다른 이의 눈에 괜찮게 보이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수치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회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다. 자신의 괴로움을 떨쳐 내는 데에만 신경을 쓸 뿐, 타인과 하나님께 대한 슬픔과 애통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처지가 유감스러울뿐 죄 자체를 심각하게 문제 삼지도 않는다. 상대가 아프다고 하니 그저 미안한 감정은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죄의 결과에 대한 자세는 외적으로 행동을 제어하겠지만, 내면의 충동적인 죄에 대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다윗은 시편에서 무지한 말이나 노새는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않으면 주인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탄식했다.(시32:9) 주인을 사랑해서 부르기가 무섭게 냉큼 달려오지 않고 단지 상과 벌로 고분고분하도록 길들여졌을 뿐이다. 사랑하는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사랑해서 받을 이익을 계산하여 주인의 명령에 순종한다. 죄를 인정함과 동시에 앞으로 동일한 행동에 대한 단호한 거부를 선언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주님께서 아파하실 죄를 끊으려고 탕자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의지적으로 죄를 인정하고 마음 깊은 곳의 죄로부터 돌아서서 험한 십자가를 지신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회개다. 그럴 때에만 안과 밖이 완전히 바뀐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10-20년이 지난 후에 후회와 반성의 흔적 보다는 성화된 인격이 남는다. 어떻게 회개할 수 있는가? 간단하다. 머릿속의 공상이 아니라 영혼과 전 존재로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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