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2023.01.22)

By
Updated: January 22, 2023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한 신학자의 발언이 경종을 울렸다. “교회가 살아남는 방법은 남들을 더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남들을 더 생각한다는 것은 남들의 눈치를 보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좀 더 상식적으로 비춰지자는 수준도 아니다. 남들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하자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남들을 더 생각한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데 더 집중하자는 의미다.

기쁨으로 번역되는 JOY는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rself Last의 약자도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부쩍 자신만을 중심에 두는 신앙인들이 많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도 않을뿐더러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다. 자신이 건강해야 남을 챙길 수 있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존재하듯 성도는 남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다.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섬길 자리를 찾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모자란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남의 필요에 집중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 졸이기보다는 남의 부족함을 먼저 채우려고 안타까워한다. 자기보다 나은 삶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거나 좌절할 여유가 없다. 욕심에 이끌려 영적인 것을 멀리 하지 않는다. 헌신의 자리에서 신실하고 섬김과 봉사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모습에 간혹 자신이 섬기는 신을 닮았다며 인정받게 된다.

교회는 소비자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진 제자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자신이 기준인 사람의 영혼은 성장이 없다. 이웃의 필요가 아닌 자신의 욕심이 먼저 보인다. 항상 유익하기 보다는 이익이 먼저 보인다. 하지만 제자들은 영적인 자리에서 헌신한다. 소그룹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자신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리를 지킨다. 기쁨이 희생에 비례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사랑의 깊이는 헌신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다보면 성숙과는 거리가 먼 싸구려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나이는 늘었으나 성숙함은 없다. 교회는 자기만 살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다. 설사 내가 죽더라도 이웃만큼은 반드시 살리겠다는 공동체가 교회다. 자기 생각보다 예수님의 뜻을 앞세우고, 자신의 이익 보다는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눈앞에 있는 이익 보다는 미래를 위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손해를 기뻐하는 공동체가 교회다. 교회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세상의 유익(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ime limit is exhausted. Please reload the CAPT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