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냐 성숙이냐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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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uary 1, 2023

부모는 자녀가 갓난아기 일 때는 그저 먹고 싸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어린 아이들이 울고 징징 거려도 귀엽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는 조금씩 공부에 대한 욕심을 갖는다. 사실 욕심보다는 기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단순한 생물학적인 성장 이외에 인격도 성장하기를 바란다. 학업 성적이 좋기를 바라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란다. 결혼도 하고 자녀들을 낳고 경제적 여건도 기대한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대들조차 부모의 잘못된 욕심으로 치부하는 시대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기대를 부모의 잘못된 욕심으로 폄하한다.

이런 기현상은 신앙생활에서도 발생한다.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닮아 성숙하기를 바라는 목회자들을 율법주의자로 몰아붙인다. 대다수가 복음의 진수를 몰라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하는 시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같이 교회 안에서 ‘이신칭의’를 명확하게 가르치는 시대도 드물 것이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노력을 언급하면 대번에 율법주의자로 낙인을 찍는 치우친 믿음 강조는 구원이 전부인 사람들을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영적성장과 성숙에는 관심이 없는 성도가 된다. 자녀에 대한 기대를 부모의 욕심으로 치부하듯,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기대를 율법주의로 오해하게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누구나 그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그러나 존재에서만 끝나면 싸구려 위로 중독자가 된다. 실력을 요구하는 직장에서 존재로 가치 평가를 해 달라고 한다면 모두가 소중한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실력으로 연봉을 결정해야 할 직장에서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면 구분이 없어진다. 물론 무한경쟁의 냉혹한 현실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세상에서는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천국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즘은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논리로 선한 경쟁심마저 없애려 하고 노력을 과도한 욕심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들로 세간의 유명세와 이익을 얻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세상은 하양 평준화 시키고, 자신은 실력을 갖추어 사람들이 지배하고 정복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신앙생활은 거듭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구원에서 멈춘 신앙, 성숙하지 않는 신앙은 생존만을 목적으로 한다. 눈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러 허기만 달랠 싸구려 인스턴트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식이다. 이렇게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은 생존도 어렵지만 건강한 성숙은 더더욱 어렵다. 성숙이 목적인 신앙은 생존의 고민을 초월한다. 올 한해 생존을 위해 애썼다면, 이제 영적성숙을 위해 작게라도 건강한 영적 생활 습관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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