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받는 성도의 자세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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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ugust 21, 2022

지금은 많이 떨어졌지만 비트코인이 급상했을 때에 투자시기를 놓쳤다며 ‘그때 사둘걸’ 하며 농담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말 그 때로 돌아가도 다시 사지 않을 것을 알기에 농담인줄 알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후회한 적은 없었던가?’ 되돌아보았다. 대학원 시절 전도폭발 막내로 있었을 때다. 3명이 전도를 나갔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전도가 하기 싫었다. 두려웠던 것인지 귀찮았던 것인지 하여간 나서기가 싫었다. 셋 중에 한 명이 전도를 하고 나머지 2명은 중보기도를 해야 했는데 그냥 기도만 하겠다며 피했다. 한 노인 분을 만나 전도가 시작되었는데 얼핏 그냥 학생들 3명이 말을 걸어주니 예의상 들어주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영접기도를 하시겠느냐는 질문에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감격해하는 그분을 보면서 순간 “내가 할 걸”이라고 아쉬워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가면 이 땅을 살면서 놓친 기회들로 아쉬워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기가 쓰임 받으면 기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쓰임 받았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인한 결과가 쓰신 분보다 높아질 때가 있다. 정교한 수술일수록 최첨단 수술 도구는 분명 유리하다. 수술 가위나 메스의 성능이 좋을수록 수술의 정확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수술환자가 회복되었다고 수술 가위나 메스를 향해 갈채를 보내지는 않는다. 의사의 솜씨가 사람을 살린 것이지 수술 가위나 메스가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쓰임 받은 가위가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수술 가위와 메스가 없이 수술을 하기 어렵지만, 수술 가위나 메스가 아무리 훌륭한들 의사 없이는 집도되지 않는다. 훌륭한 의사에게 선택을 받았다면 훌륭한 도구임에 분명하나 최고의 의료장비조차도 의사 없이는 존재의미가 없다. 수술 장비로 선택을 받은 것이 자긍심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다. 꼭 필요한 수술일 경우 하나님은 나 아니어도 사용할 도구가 많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만큼 구원을 받기 쉬운 종교는 없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의를 믿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쉬운 방법이 있을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라는 사실을 확신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려는 타종교의 입장과 같은 선에서 본다면, 기독교보다 성화되기가 어려운 종교도 없다. 자신의 공로나 능력으로 레벨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욱 자신을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쓰임 받기를 사모하며 예수님만 드러나야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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