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신앙 교육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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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ly 30, 2022

부모는 자녀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방임해선 안 된다. 구약과 신약 시대에는 자녀들을 소위 놀이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온 식구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갔다. 어른들끼리 우아하고 경건하고 조용하게 예배하고 싶은 마음에 자녀들을 예배에서 분리한 것이 오늘날 신앙전수에 문제를 일으켰다. 자녀들에게 필요한 전문 지식은 질의응답 혹은 성경공부에서 다루어야 한다. 흥미 위주로 변형된 세대별 독립 예배는 프로그램의 수준과 질을 비교하는 경쟁만 부추기지 진정한 제자를 만들지 못했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말씀에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모습을 본 자녀들은 신앙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별 생각 없이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따로 모아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한 결과 중고등부와 대학부, 어른 예배로 올라가며 자녀들이 신앙을 떠났다. 깊이 있는 말씀을 접하지 못한 자녀들에게 교회는 더욱 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에피타이져만 제공한 셈이 되었다. 그 결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회보다는 점점 더 자녀들을 붙잡기 위해 재미를 추구했다. 자녀들은 재미가 아니라 의미에, 영상이 아니라 영성에 노출되어야 한다.

힘 쎈 여섯 마리의 말이 각기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면 아무리 명마부라 하더라도 그런 말들로 멀리 갈 수 없다. 가장의 뜻을 따르지 않는 가정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방향이 없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같은 비전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려면 같은 예배를 드리면서 뚜렷한 주관을 가진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 모든 교인이 한 비전을 오랫동안 가질 수 있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은 모두가 함께 예배하는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예배드리면서 진리를 붙잡고,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본이 되는 모습을 부모로부터 보는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다.

딸 바보 아버지가 이름난 현자를 찾아가 물었다. “딸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신앙 안에서 성장하게 도와 줄 수 있을까요?” 현자는 웃으며 정원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세 그루의 나무를 보여주며, “이 나무를 한 그루씩 차례대로 힘껏 뽑아보십시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갓 심어 놓은 첫 번째 나무 쉽게 쑥 뽑았지만, 조금 뿌리를 내린 두 번째 나무를 뽑을 때는 안간힘을 써서 겨우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마지막 세 번째 나무는 아무리 힘을 줘도 뽑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이번 나무는 뽑을 수 없어 밑동을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자녀의 신앙 교육은 이 나무 뽑기와 같아요. 오랜 습관이 깊이 뿌리를 내려버리면 밑동을 자른다고 해도 뿌리는 남죠. 어릴 때 진정한 예배를 드리도록 해 주면 커서도 떠나지 않고, 어리다고 예배시간에 다른 것들을 쥐어주면 커서도 예배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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