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 202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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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ly 10, 2022

사육과 양육이 다르고 학대와 체벌은 분명 다르다. 단어를 구분할 줄 알아야 변화가 시작되나 의미 구분을 한다고 좋은 쪽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초등학교에서 6세 여아를 경찰이 타이 랩으로 수갑처럼 묶어 체포한 동영상으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분명 그 여자아이는 말썽을 피우고 교사들을 발로 걷어차는 등 난동을 부렸다. 하지만 6세 여아를 무식하게 타이 랩으로 묶는 과잉 체포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처음 걷는 부모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 물리적 폭력을 자제하는 사람조차도 언어폭력에는 무방비다. 배우자의 감정을 신경 써야 할 상황인지라 자녀에게는 너무 쉽게 말을 내뱉는다. 미리 경고를 했다거나 애들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이라는 포장지 뒤에 숨어 언어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녀에게 향하는 부모의 손길이 사랑보다 아픔으로 남는다면 학대다. 부모의 말이 자녀의 가슴에 닿을 때 불안과 상처로 남는 것도 학대다. 돌보기가 조금 버겁고 피곤하다며 자녀 때문에 손해보고 희생한다는 생각을 갖는 부모는 자녀를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애완동물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녀를 기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가급적 실수하지 않으려고 부모들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세 가지 ‘척’을 하는 것이다.

양보란 없다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춘기 딸을 둔 엄마가 “에휴, 내가 제를 왜 낳아서…,”라고 혼잣말을 했다. 딸이 듣고는 “누가 이렇게 낳으래?”하며 부모의 유전자를 탓했다. 신경질이 난 엄마는 재치를 발휘하여 “누가 경쟁에서 이기래? 네가 경쟁에서 이겨서 낳은 거잖아? 맨날 이기려고만 하니”하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의기양양 말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딸이 대답했다. “누가 경기를 개최하래?”

물론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지만 징계와 훈계가 없으면 자식은 망한다. 자녀가 잘못 할 때 체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자녀들은 맞아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 아니다. 체벌이 사람을 바꾼다면 교도소 출소자들은 다 바뀌어야 한다. 체벌의 아픔이 아니라, 체벌에 담긴 사랑 때문에 사람은 바뀐다. 사랑이 기초가 된 체벌을 하고 달갑지 않은 체벌에서도 따스한 사랑을 느끼 줄 아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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