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똑똑이’가 되지 마세요.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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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ne 5, 2022

20여 년 전 어떤 교회의 청년부를 맡을 당시 같이 사역하던 부목사님의 조카가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왔다. 어느 날 그 청년이 홈스테이에 대해 좋지 않은 일을 많이 당했다며 한 이야기들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목회자 모임 시간에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자신의 조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부목사님은 매정하게 조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조카인데 저렇게까지 받아주지도 않고 오히려 정신 차려야 한다고 할까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그 부목사님이 자신의 조카를 그렇게 대한 이유를 알 듯 했다. 무엇이든 자기중심적으로만 해석을 하고 어떤 선택이든 넓게 보는 안목이 없이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하였다.

세상에는 상대적 진리와 성경적 진리의 싸움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다양한 진리와 상대적 진리 사이에서 선택을 하며 산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이후 강압적으로 금지하거나 명령하시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많다고 한들 관심도 없다.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가 유리한 쪽이 아니라 유익한 쪽을 선택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길 원하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편안한 것만 선택한다. 말로는 예수님을 닮겠다고 하면서도 실제 선택은 십자가의 희생과는 거리가 먼 정 반대의 길이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결정을 바꿀 정도로 겸손하지 않다. 그런 일은 일생에 잘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다 하더라도 물건을 살 때나 벌어지는 일이다. 영적인 일이나 중요한 일들은 벌써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고 나서야 찾아온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점검하기 위해 목회자를 찾아오는 지혜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자기 생각을 통지하기 위해 찾아온다. 성경에서는 마음에 이미 결정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서(혹은 듣지 않을 예정이면서) 기도하는 것(혹은 선지자를 찾아오는 것)은 역겹다고 말한다.(잠28:9) 선택의 기로에서 유리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성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묵상을 적용 했을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선택의 기로에서 묻기 위함이 아니라 일방적 통지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해줄 말이 없다. 자기 나름의 결정을 하고 온 사람에게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 목회자가 있는 이유, 목자가 있는 이유, 신앙의 선배, 적어도 인생의 선배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쓴 소리라도 일단 듣고 분별해보려고 기대하며 찾아와야 지혜를 얻는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확인차원에서 오는 사람들은 통지보다 의논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를 찾아야지 자기가 결정하고 통지하기 위해 사람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경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옛 어른들은 그렇게 자기 기준으로만 선택하는 사람들을 “헛똑똑이”라고 불렀다. 똑똑한 줄 알지만 결국 망하는 길로 간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고 정직한 선택을 하라고 공동체를 주신 것이다. 경외롭고 신비로운 신앙의 길을 잘 걷기 위해서는 통지가 아닌 의논하려는 자세로 공동체 안에 머물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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