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철학자가 되어보자.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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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February 27, 2022

철학자들은 좋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영적 성숙을 이룬다. 주요 질문 3가지는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각각 자기 정체성, 삶의 이유,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한 번쯤 깊이 고민해 볼 질문이다.

흔히 자신이 하고 일이나 맡고 있는 직책, 혹은 능력으로 자기를 정의한다. 그런 것들은 자신에 관한 설명이지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정확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예수님 덕분에 존재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살아가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닮아가려고 날마다 열망하는 존재다.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섬기며 변화를 돕는 것은 목회자의 임무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다. 가진 능력과 역할을 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때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 예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살아가고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존재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물론 행복을 목적으로 제시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릭 워렌은 그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목적을 예배, 교제, 제자, 사역, 증거로 요약한다. 과연 이 목적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세대일까? 하나님을 예배하고, 믿는 자들끼리 서로 섬기며, 제자로 성장하고 제자를 삼고, 세상을 잘 보호하고 다스리는 사역,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목적으로 다가갈지 고민이다. 가정교회는 이 5가지 목적을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으로 압축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사랑하며 살자.”이다. 결국 사랑했던 사람들만 남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랑의 개념이 중요하다. 세상은 같은 사랑을 말하지만 정의가 다르다. 성을 왜곡하거나 문란한 성생활을 사랑으로 오해한다. 혹은 회개하도록 책망해야 할 상황에서 진리를 은폐하는데 남용되는 단어로도 쓰인다. 무엇이 사랑일까? 유진 피터슨은 성경 통독을 하다 가장 많이 중단되는 곳이 레위기임을 알아내고는, 딱 19장 18절 한 절만 읽고 민수기에서 계시록까지 다 읽은 후 다시 돌아오라고 조언한다. 그 한 절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사랑’이란 단어가 여기에 이르러서야 처음 ‘동사형’으로 사용된다. 놀랍지 않은가? 제사를 가르치는 레위기에서 사랑의 첫 동사형이 나온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있기 때문이리라. 성경에 의하면 사랑은 상대를 성숙하게 한다. 사랑은 상대를 거룩함으로 이끈다.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지 “네 자신을 위해 사랑을 받으라.”는 성경 구절은 없다. 세상이 남발하고 오용하는 사랑이 아니라, 거룩함과 성숙으로 이끌어주는 가슴앓이를 통한 성경적 사랑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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