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은 성숙을 가져옵니다.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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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ember 13, 2021

다소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은 눈치를 너무 봐서 문제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은 너무 눈치가 없어서 문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훈육이든 교육이든 사랑이 바탕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최근 학계의 분위기는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치우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우려하는 글이었어요. 성도들은 신앙이 깊어질수록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죠. 국적, 인종, 재정 상태와 상관없이 신실한 신앙인들은 그 성품의 기본이 사랑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정의를 반드시 내려야 해요. 남녀 간의 사랑은 다소 육체적이고, 친구간의 사랑은 우정과 의리, 가족 간의 사랑은 헌신적이죠. 보통 사랑을 정의 할 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격려하고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는 노숙자를 사랑할 수 있어요. 술이나 담배 중독자 혹은 마약 중독자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죠. 그런데 만약 살인자는 어떨까요? 실수로 한두 번 살인했던 자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자의 경우에는 격려해주고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문제죠. 또 다른 예로 지속적으로 간음이나 강간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가정이 파괴되고 피해자가 속출하는데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존재를 인정하며 격려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한다면 정신 나간 것이죠. 살인과 간음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인정해 주라고 한다면 동의할 수 없어요. 격려와 존재 인정 측면의 사랑을 위해서는 상대가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때 자신과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고려해야만 하죠. 그런 고민 없이 단순히 사랑이라는 거룩하고 숭고한 단어를 잘못 사용하면 ‘무뇌충’이 되죠.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행범으로 잡힌 여인을 정죄하거나 돌을 들어 치지 않으셨어요. 죽이겠다고 돌을 든 군중들로부터 그 여인을 지키시고 살려주셨어요. 그런데 또한 예수님은 ‘지속성’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볼 때 여인의 죄를 격려하고 지지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게 하셨어요.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명확하게 기준을 말씀해 주셨죠. 진정한 사랑은 성경적 기준과 기대가 있어요. 상대방의 성숙을 향한 기대와 기준이에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듯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성숙과 성장을 가져와요. 성숙과 성장이 있는 사랑은 상대를 향한 기준과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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