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자기 사랑 (202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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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uary 24, 2021

유대인은 십계명을 잘 지켜보려고 613가지로 늘렸지만 예수님은 두개로 압축을 하셨어요.

몸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죠.

신학자들은 이웃을 사랑하려면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자기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참 사랑의 근원이시기 때문이고,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이웃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일리 있는 생각에서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랑이 이웃 사랑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에요.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자기는 사랑하지 않느냐 그렇게 본능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죠.

은혜로운 자기 사랑이라고 하니 자기 사랑 그 자체가 은혜롭다는 뜻으로 착각하면 곤란해요.

자기 사랑을 하더라도 은혜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그리스도인다운 해석이에요.

자기 사랑에는 타고난 자기 사랑, 육에 속한 자기 사랑, 은혜로운 자기 사랑이 있다고 해요.

타고난 자기 사랑은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 기본적인 욕구래요.

육에 속한 자기 사랑은 소극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이기심에서부터 시작 되요.

은혜로운 자기 사랑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을 행하는 거예요.

타고난 자기 사랑과 육에 속한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우상숭배를 해요.

식욕은 산해진미를, 야망은 자기 영광을, 쾌락은 정욕을, 욕심은 재물을 신으로 삼게 되죠.

자기 사랑을 자신의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 최고의 선이자 가장 고상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게 되요.

타고나거나 육에 속한 자기 사랑에 머무르면 ‘정인이 사건’과 같은 짓도 서슴지 않게 돼죠.

은혜로운 자기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만이 소망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로운 자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신앙 양심을 지키는 거예요.

신앙 양심이라는 집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존중히 여겨드리고 그분의 음성대로 사는 거예요.

신앙 양심이란 세상기준이 아니라 말씀이 판단하시는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거예요.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스스로 세뇌되어 결코 믿을 수가 없어요.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기준 삼으면 고무줄 늘어나듯 자기 마음대로 상대적이 되죠.

세상 기준으로 양심적인 사람은 기준을 배울수록 죄를 벗어나며 더 부드러워지기 보다는

배운 만큼 더 영악하게 죄를 저지르고도 남 탓을 하거나 걸리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술 탓, 피곤 탓, 기분 탓, 등의 온갖 탓을 가지고 와서 죄를 경감하려고 하죠.

성경을 기준으로 한 양심이 아니라면 결국 남, 마귀, 혹은 중독 등의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죠.

그냥 ‘양심’이 아니라 ‘신앙 양심’을 통해 은혜로운 자기 사랑을 하고 이웃도 사랑하게 되요.

타고난 혹은 육에 속한 자기 사랑으로는 결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어요.

성경이 양심을 사로잡고 말씀이 삶을 변화시킨 사람만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요.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즐거워하며 영광을 돌리는 은혜로운 자기 사랑의 사람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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