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려면 (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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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December 19, 2020

성경적 가치관에 투철하신 부모님 덕(?)에 어려서 엄살이나 과장을 하면 꾸중을 들었어요.

좋은 일을 한 후에는 그것을 떠벌리거나 사람들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하나님께서만 기억하고 있어야 진정한 섬김이 된다고 하셨죠.

오른 손이 한 일이 너무 자연스러워 왼 손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라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가르침인데 어린 저로서는 나쁜 쪽으로 적용했던 것 같아요.

오른 손이 한 짓을 왼 손은 모르게 하겠다며 나쁜 일을 하고도 안 걸리려고 노력했죠.

고등부 때 미군 부대 약사로 근무하시며 홀로 되신 ‘섬김의 달인’ 집사님이 계셨는데

교회에 오실 때마다 맛있는 것을 사오셔서 우리들은 ‘엄마 집사님’이라고 불렀어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종각’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파파이스 치킨’도

미군부대에는 먼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푸짐하게 사오셔서 치킨 파티를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특히 새벽 기도를 싫어했던 저는 기도가 끝나고 집사님이 교회 마당에 있던 청년들을 데리고

근처 기사식당으로 가서 콩나물 국밥을 아침으로 사 주신 덕분에 기도의 맛(?)을 알게 되었죠.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인상 깊었던 장면들과 함께 그분의 입버릇 같은 말이 생각나요.

맛있게 먹고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섬김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셨어요.

눈치를 보며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말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셨죠.

그러면서도 ‘엄마 집사님’ 역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몰라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요즘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보니 선교단체마다 원주민들을 위한 선물 프로젝트를 준비해요.

어떤 분은 신문에다 후원요청 광고도 올리고 어떤 분은 단톡 방에 사진으로 홍보를 하죠.

결코 나쁜 의도로 올리는 것도 아니고 교회들이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릴 기회에요.

저도 친구들과 LFNM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15년 넘게 원주민 사역을 하고 있는데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서 원주민 학교 학생들에게 보내고 있어요.

올해는 한국의 몇 교회의 후원을 받아 장갑, 샤프, 필통, 마스크, 과자 등을 넣어 전달했어요.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여기저기 알리지는 않았는데요.

대신 떠벌리지 않는 차원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만 인증 샷으로 공유해 드렸는데,

문득 예닮 식구들에게는 ‘매년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알려야겠다.’는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닮 식구들은 왼 손이 아니라 모두가 오른 손이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ㅎㅎ

섬김의 현장이 갈등이 아니라 기회가 되고 모두가 오른 손이 되길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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