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을 위한 기도시간(2025.12.07)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모교회를 섬기던 한 목사님이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떠나셨습니다. 몇년의 시간이...
가정교회를 왜 하는가?
친구들과 만나 교제를 하다보면 ‘가정교회를 왜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들어요. 장단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한 것 같기도 하고, 과연 가능한 사역이냐는 의미 같기도 해요. 동문서답 같지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합니다.’라고 대답해요. 어려서부터 부르심을 받아 반 강제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으니 학생부 회장을 제외해도, 교사와 간사로 섬긴 것을 포함하면 25년 이상, 전문 목회자로서는 20년을 사역했어요. 그 기간 동안에 배운 쉬운(?) 목회의 경험과 노하우는 얼마든지 많아요. 그런데 본질을 놓치고 있으면서도 바쁘고 안정적인 사역 때문에 잘 하는 줄 착각할 수 있죠. 본질을 놓쳤을 때 찾아오는 현상 중에 하나가 매너리즘이 아닐까 해요. 무엇이든 첫 사역 시에는 나름 열심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요. 가정교회를 하면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을 보다 쉽게 이겨요. 하나님의 소원대로 그의 몸 된 교회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을 감당하려고, VIP에게 집중하는 교회다운 교회를 해 보려고 하다보면 마음이 무뎌져서는 안 되거든요. 가정교회는 매주 찾아오는 목장모임, 섬겨야 할 VIP, 삶 공부와 헌신 예배를 통해, 매너리즘에 빠질만한 삶을 다시 부여잡고 생기 있게 유지해야 할 이유를 줘요.
구원받은 감격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던 사람도 일단 매너리즘에 빠지면, 어느덧 행복하려고, 성공하려고, 잘 살아보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요.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이나 외동 딸 공주님을 기대하는 일종의 불공정 거래죠. 사랑해서 그냥 얻어지던 것들을 얻기 위해서 사랑하는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말로도 사랑표현을 해야겠지만 삶을 통해 드리는 희생이 매너리즘을 이기게 해요. 부모님들의 자녀들을 향한 희생이 남녀간의 감정을 압도하는 숭고한 사랑인 것처럼, 사랑 중에 가장 최고의 사랑은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임을 부인할 수 없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희생의 분량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측정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얼마나 삶 가운데 희생하느냐로 측정할 수 있어요.
목회자로서 가정교회를 한다는 것은 일반 목회보다 더 많은 희생이 요구돼요. 귀한 목자님들에게 목회를 맡기고 짐을 덜어보려고 가정교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일반 목회를 하는 것 보다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더 버겁고 바빠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삶의 희생을 통해 고백하고 싶은 거예요. 희생은 하나님께 순종, 이웃은 사랑으로 다시 표현된다고 볼 수 있어요. 매너리즘을 이기고, 목회현장에서 사랑을 날마다 고백하고 싶어서 가정교회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고 싶어서 가정교회를 해요. 지난 일 년 동안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정성이 담긴 희생으로 세워지는 목장, 교회로 하나님께 고백하는 연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