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때문에 거울을 깨서는 안 돼요.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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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ne 1, 2019

상처 때문에 거울을 깨서는 안 돼요.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장시간 수술 후에 붕대를 풀고 거울을 보게 되면,

놀라서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거울을 던져 깨버린다고 해요.

아무리 수술이 잘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과거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힘드니,

그 좌절감과 실망감이 얼마나 클지를 이해하면 당연한 반응 같아요.

거울을 깨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몇 개라도 깨도록 가져다주겠지만,

깨진 거울을 치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좋겠어요.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거울로 비유해요.

외모를 보여주는 거울처럼 말씀은 윤리적 판단, 영적 분별력 등 내면을 보여주죠.

그런데 간혹 말씀이 자신의 과거 상처를 건드리거나 문제를 보여줄 때,

그 기준이 틀렸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집어 던져 깨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거울을 깬다고 화상을 감출 수 없듯 기준을 깬다고 내면이 아름다워지지는 않아요.

거울로는 남이 아니라 자신을 보듯, 말씀의 기준도 자신을 보게 해 줘요.

 

상처와 분노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어요.

거울에게 잘못이 없듯 하나님께서 잘못한 것도 아니고 성경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쓰디쓴 인생의 경험 때문에 생각과 말로 분노를 표출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그 파편들을 치워주는 것 외의 다른 도움을 줄 수가 없어요.

성경이나 말씀의 기준을 깨고 싶은 충동이 입술에서 맴돌 때마다,

사랑과 공의의 예수님께서 듣고 계시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입술의 말을 들으시면서 기뻐하실까 아니면 서운해 하실까를 생각해 보는 거예요.

 

거울을 깨지 않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상처를 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해요.

당장 거울을 깨 버리면 속이 편할지는 몰라도 진실을 외면하고 사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성경과 말씀의 기준을 깨 버리면 주님 앞에 서는 마지막 그 날에,

너무나도 분명한 기준에 비춰진 더욱 비참한 자신만 발견할 지도 몰라요.

상처받은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변할 수 없는 기준을 깎아 내릴 것이 아니라,

기준도 주시고 그 기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해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지혜에요.

기준미달이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준을 뛰어 넘도록 하시려고,

바로 그 기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신뢰하며 용기를 내야 되요.

상처로 거울을 던지고 싶을 때 용기 있게 거울 앞에 서 보세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용기 있게 설 때에 말씀대로 살도록 해 주십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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