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을 높입시다.(20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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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March 24, 2019

수준을 높입시다.

 

‘점’이 ‘선’을 이해할 수 없고, ‘선’이 ‘면’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수준차이라 해요.

‘면’의 입장에서는 역시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원’은 더욱 이해가 안가죠.

크신 하나님을 말할 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듯 누구는 코, 누구는 다리, 귀, 꼬리 등등

자신이 이해한 부분을 이해하고선 그것만이 하나님이라 고집한다는 예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 예를 이해하려면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한번은 봤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요.

코끼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예 조차도 암호수준이죠.

 

사람은 지혜와 인격을 포함해 자신의 수준으로만 주변을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에도 결국 그 사람의 수준을 넘지 못하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정론이나 선악의 문제, 의인의 고난 등의 고차원적 질문들이 많은데,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 줘도 수준이 따라주지 못하면 이해가 어렵죠.

광활한 우주에 대해서 배워서 알아야 우주를 만드신 크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고,

미세한 세포를 관찰해 본 경험이 있어야 섬세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듯이,

영적인 것에 대한 이해력은 영적인 것의 크기가 아니라 나의 수준에 달려 있어요.

 

인생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사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행운을 얻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디자인인 경우가 많죠.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알게 되고 더 깊게 만난 경험들이 그 예죠.

그런데 수준이 낮으면 현상에 대한 해석이 어린아이처럼 되어 버려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불평하고 불만하며 금방 포기하고 싶어 하죠.

목장을 하다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거 봐라 이 꼴 날줄 알았다.’라고 한다든지,

마치 자신이 의로운 선지자라도 되는 양 부정적인 말을 나열하기도 해요.

 

애굽 군사들이 뒤 쫓는다는 소리를 듣고 홍해 앞에 선 백성들은 ‘우린 이제 다 죽었다.’라며

아우성을 치고 애굽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를 왜 꼬드겼느냐며 모세를 비방하고 원망했어요.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준이 되지 않으니 홍해 앞에 다다르자,

자기의 능력과 영적 수준에만 꼭 맞게 매사에 부정적이 되어 버린 거예요.

홍해는 나를 두렵게 하려는 도구가 아니라 적군을 심판하고 수장시키려는 도구인데,

홍해 앞에 서자 멀쩡한 길 놔두고 이상한 길로 인도한 모세의 잘못으로만 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디딤돌로 주셨는데 그것을 걸림돌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정교회의 세 축인 예배, 삶 공부, 그리고 목장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하며 수준을 높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디딤돌을 걸림돌로 착각하지 않는 수준높은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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